방에서는 소독약과 금속 냄새가 났다. 침대 옆에서 기계가 느린 리듬으로 깜빡이는 것이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였습니다. 클라라는 움직이기엔 너무 힘이 없고, 희망조차 갖기엔 너무 지친 채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있었습니다. 모든 숨소리가 빌려온 것처럼 느껴졌고, 모든 심장 박동은 그녀가 아직 여기 있다는 것을 조용히 상기시켜 주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기 있겠다고 약속했었죠. 아플 때, 두려울 때, 잠 못 이루는 긴 밤 등 모든 순간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약속을 한 사람이 떠나면 약속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에반을 봤을 때 그는 문 앞에 서서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지쳐서 반박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침묵만 있었습니다. 전화도 없었고. 방문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 누군가와 한때 공유했던 삶의 메아리만 남았습니다. 바깥 세상은 계속 움직였지만 그 방 안에서는 시간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서 한 가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
아침 햇살이 부엌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클라라가 팬케이크 반죽을 휘젓고 있는 카운터에 쏟아졌습니다. 클라라가 따라 부른 경쾌한 옛 노래가 라디오에서 낮게 흘러나왔다. 커피 냄새가 가스레인지 위 시럽의 단맛과 어우러져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에반은 아직 반쯤 잠든 채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고 방으로 들어왔다. “일찍 일어났네.” 그가 중얼거리며 몸을 기울여 그녀의 뺨에 키스했습니다. 클라라는 미소 지었다. “매일 아침마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그는 웃었다. “그리고 당신은 항상 좋은 일처럼 말하죠.” 결혼 5년, 소소한 일상과 조용한 기쁨의 5년.
아내의 콧노래, 카운터에서 윙윙거리는 남편의 휴대폰, 꾸준히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온 두 사람의 여유로움 등 아침은 두 사람의 리듬이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 그녀는 수업에 필요한 스케치북을 챙겼습니다. 물감으로 얼룩진 꿈나무들로 이루어진 활기찬 학생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녀가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는 자주 피곤해졌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일지도 모르죠. 긴 수업 시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아파트 아래 공원은 가을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마음속으로 색채를 스케치하며 공원을 지나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모든 것이 평범했습니다.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요. 때때로 최악의 상황은 조용히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녀는 몰랐습니다.
멈추지 않는 코피. 설명할 수 없는 멍들. 매일 더 깊어지는 피로감. 에반은 그녀가 느려지고 피부가 창백해지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부엌 바닥에 쓰러진 그날 밤까지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세상은 소독약 냄새가 났습니다. 머리 위 빛은 거칠고 차가웠습니다. 에반은 그녀의 병원 침대 옆에 앉아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과 엉키고 얼굴을 굳게 다물고 있었습니다. “놀랐잖아요.” 그가 속삭이면서 웃으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의사의 말이 정적처럼 들렸다. 백혈병. 공격적. 즉각적인 치료. 그녀는 화학 요법, 골수, 예후와 같은 단어의 파편들을 잡았고, 그 단어들은 서로 뒤섞여 처리하기에는 너무 큰 무언가로 변했습니다.

잠시 동안 그녀는 에반의 눈에서 동정심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빨리 사라져 자신이 상상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우린 이겨낼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넌 나아질 거야. 내가 약속할게.” 그녀는 그의 말을 믿었습니다.
처음 몇 주는 하얀 병실, 부드러운 말투의 간호사, 기계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에반은 안락의자에서 잠을 자고, 물을 가져다주고, 진료 중간중간 이마에 뽀뽀를 하는 등 모든 순간을 함께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말을 할 수 없을 때 농담을 건네고, 너무 피곤해서 말을 할 수 없을 때 침묵을 채웠습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그가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암은 육체보다 더 많은 것을 비워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좌, 일상, 확실성까지 빼앗아 갑니다. 보험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문 앞에 날아오는 모든 청구서가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에반은 추가 근무를 하고, 늦게까지 일하고, 몇 년 동안 하지 않았던 프리랜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앞서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클라라는 그의 목소리에서 긴장된 기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치료가 효과가 있어요.” 그는 낙관적으로 들리려고 노력하며 말했습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그녀는 그가 그 후 얼마나 자주 은행 앱을 확인했는지, 미간의 주름이 사라지지 않는지 모른 척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메스꺼움이 먼저 오고, 그다음 통증이 오고, 그다음 머리카락이 나왔습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날이 갈수록 낯설어졌습니다. 피부가 칙칙해지고, 미소가 약해졌으며, 집 안을 가득 채우던 웃음소리가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녀는 오렌지, 손, 창밖의 공원 등 돌아가고 싶은 삶의 단편들을 작은 것들로 그렸습니다. 에반은 침대 옆에 그림을 걸어두곤 했지만, 요즘은 그림보다 휴대폰에 더 시선이 머물곤 했습니다.

부드러운 신호음과 소독약 냄새, 끝없이 펼쳐진 하얀 복도가 마치 자신의 아파트처럼 익숙한 병원은 그녀에게 제2의 집이 되었습니다. 에반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흐릿함 속에서도 그녀의 변함없는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상수조차도 압박을 받으면 깨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그녀가 다 읽지 못한 책과 냄새도 맡지 못하는 꽃, 그리고 그녀를 미소 짓게 하는 바깥 세상 이야기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어느 날 밤, 메스꺼워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녀에게 그는 호흡이 고르게 될 때까지 부드럽게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녀가 피곤해 보인다고 사과하면 그는 그녀의 손을 꽉 쥐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야.”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돈은 처음에는 조용했다가 무시할 수 없는 제3의 존재처럼 그들의 대화에 스며들었습니다. “집주인이 또 전화했어요.” 어느 날 아침, 그는 너무 차분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그냥 착오가 있었어요, 제가 처리할게요.”
“얼마나 안 좋은가요?” 그녀가 물었습니다. “나쁘지 않아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커피잔을 조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천천히 빠지기 시작했고, 한 가닥씩 손가락 사이에 끼거나 아침에 베개 위에 남겨졌습니다.

그녀는 그가 들어오기 전에 빗으로 털어내곤 했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창문에 비친 창백하고 연약한 두피와 고르지 않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 광경에 그녀는 목이 메었습니다. 그때 에반이 차 한 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뒤에 나타나 그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름다우시네요.” 그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주저하지도 않고 억지로 환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확고한 확신만 있었죠. 그 말에 그녀는 거의 풀릴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라 그에게도 피로가 몰려오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는 똑바로 앉은 채로 잠들었고, 무시한 메시지로 전화가 윙윙거렸습니다. 그는 식사를 거르기도 했습니다.

복도에서 몇 시간 동안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가끔 약의 안개 속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어떻게 도와줄 수 없다는 듯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녀는 잔인한 것이 아니라 무력감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죠.
그녀는 그가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 함께 나누던 웃음이 무미건조한 일상과 잡담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위해 더 쉽게,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강한 척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둘 중 누구도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은 균열이 표면 아래에 미세한 선으로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옷을 입고 들어왔습니다.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넥타이를 반듯하게 매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 그녀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 그대로였고, 그녀는 오늘 누가 저 남자의 맞은편에 앉게 될지 잠시 질투가 났습니다.
“좋아 보이세요.”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피곤한 눈빛이었지만 미소를 지었습니다. “몇 시간만 있다가 갈게요. 다른 고객을 데리러 왔거든요.” “서두르지 마세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 있을게요.”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날 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너무 힘이 빠져서 앉아있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손이 떨릴 때 잔을 안정적으로 잡아주었습니다. 베개를 다시 조정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간호사가 약을 더 먹기 위해 옆으로 비켜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그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동정하지도, 조급해하지도 않고 그저… 공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클라라는 잠결에 푸른 병원 불빛에 비친 그의 실루엣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사랑은 이제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더 조용하고, 더 얇아지고, 그가 느끼는 것과 견딜 수있는 것 사이에 뻗어있었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는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방문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바로 받지 않은 전화. 답장을 깜빡 잊은 메시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무시할 수 없는 패턴을 형성했습니다.
그는 “내일 들르겠습니다”라는 말 대신 “내일 들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보고 싶다고 말해도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저녁에 전화를 걸면 뒤에서 웃음소리, 유리 깨지는 소리 등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리곤 했는데, 그는 재빨리 “지금은 통화할 수 없으니 나중에 전화할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건강해져서 그와 함께 공원을 걷는 꿈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그거 좋네요”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늦게 도착했고 비 냄새가 여전히 재킷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만이 아니라 그 아래에는 그녀가 한 번도 뿌려본 적 없는 고가의 꽃향기 같은 희미한 향수 흔적이라는 낯선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녀의 눈치를 알아차리고 짜증난다는 듯 옷깃을 문질렀다.

“또 일이 늦어지나요?”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연이은 회의 때문에요. 요즘 정신이 없었어요.” “하루 쉬는 게 좋겠어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너무 지치셨어요.”
그는 웃음 같지 않은 조용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럼 뭘 하라고요? 여기 앉아서 당신이 자는 걸 지켜보라고요?” 그 말은 그가 의도한 것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고 죄책감이 눈가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하지만 나중에 간호사가 정맥주사를 맞추고 불빛이 어두워지자 클라라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습니다. 여기 앉아서 당신이 자는 모습을 지켜봐요. 그는 더 이상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클라라는 그를 탓할 수 없었습니다.
에반은 여전히 들렀지만 뭔가 달라졌다. 그는 종이컵 커피를 들고 와서 침대 옆 탁자 위에 놓고 그녀가 말하는 동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가끔은 그녀가 질문할 때 고개를 쳐다보는 것을 잊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그녀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는 엄지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며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타이핑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다시 일해요?” 그녀가 부드럽게 물었습니다. “언제나요.”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그가 마침내 그녀의 눈을 마주쳤을 때 죄책감이 살짝 스쳤지만 사과는 없었습니다. 그저 피곤함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거리감. 치료를 마친 어느 날 저녁, 그는 늦게 들어왔습니다. 그의 셔츠는 구겨져 있었고, 넥타이는 풀려 있었으며, 평소보다 더 진한 향수 냄새가 났습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고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습니다. “괜찮아요?” 그녀가 조용히 물었다. 그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피곤해요. 긴 한 주였어요.” 그녀는 망설였다. “평소보다 더 많이 나가셨네요.” 그는 짧고 방어적인 웃음을 지었다. “한 번에 모든 곳에 있을 수는 없어요, 클라라. 노력 중이야.” 그가 말하는 방식이 따끔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몸을 숙이고 팔꿈치를 무릎에 올린 채 바닥을 응시했습니다. “당신은 내가 어떤 기분인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매일 이런 당신을 보는 건… 정말 죽고 싶어요.” 그녀의 가슴이 조여 왔습니다. “난 여기 있으라고 부탁한 적 없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당신이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그게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거야.” 그는 숨을 내쉬며 몸을 뒤로 젖혔다. “난 그냥… 욕구가 있어요, 클라라. 난 영원히 이걸 할 수 없어. 난 그럴 몸이 아니야.”
그 말은 유리 깨지듯 두 사람 사이에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정말로, 한때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남자를요. 부엌에서 그녀와 함께 춤을 추던 그 남자를요. 이제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는 죄책감이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자리를 떠났습니다. “시간이 필요해요. 그게 다예요.” 문이 닫히자 적막이 엄습했다.

그날 밤 그녀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어두운 창문에 희미하게 비친 얼굴은 창백하고, 눈은 공허하고, 몸은 쇠약해진 채 깨어 누워 있었습니다. 세상은 고요했지만 그녀의 내면에서는 무언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이 되자 열이 다시 올랐습니다. 간호사들은 그녀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에반에게 한 번, 두 번, 세 번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4일째 되던 날, 그의 목소리가 흐릿하고 초조한 목소리로 들려왔습니다. “클라라, 나 회의 중이야. 다시 전화해도 될까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요.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잠시 멈칫. 희미한 교통 체증 소리. “나 고속도로에 갇혔어요. 엄마한테 전화해줘요, 알았죠? 엄마가 더 빨리 도착할 거예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가 끊겼습니다. 그녀는 전화기를 가슴에 대고 앉아서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도착한 매기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창백한 표정의 조용한 클라라의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알았습니다. 그녀는 딸의 손을 꼭 잡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더 많이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기는 오랜 침묵 끝에 중얼거렸습니다. “여기 앉아만 있으니 쓸모없는 것 같아요.” “아니야.” 클라라가 약하게 말했다. “당신은 여기 있잖아요. 그거면 충분해요.” 매기는 망설이다가 숨을 내쉬었다. “음… 아마 조금 더 할 수있을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변호사들이 전화했어. 네 할아버지 유산이 드디어 정리됐대.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남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은 될 거예요.” 클라라는 너무 피곤해서 웃을 수 없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지만 그래도 감동했습니다. “엄마, 그럴 필요 없어요.” “하고 싶어요.” 매기가 부드럽게 끼어들었습니다. “넌 회복하는 데 집중해, 알았지?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잠시 동안 희망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클라라가 몇 달 동안 느끼지 못했던 희망이었습니다. “에반은 정말 안심할 거예요.” 클라라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는 청구서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어요. 아마 이걸로 부담을 덜 수 있을 거예요.” 매기는 잠시 멈칫하며 눈을 살짝 감았습니다. “아직은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클라라는 얼굴을 찡그렸다. “왜 안 돼요?” “제 계좌에 입금될 때까지 기다리죠.” 매기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서류 작업, 송금, 지연 등 이런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시잖아요. 실제가 되기 전에는 기대치를 높일 필요가 없잖아요.” 클라라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알았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조명을 어둡게 하는 순간, 클라라의 마음 한구석에 조용한 생각, 즉 어머니의 경고가 돈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똑같은 간호사 교대, 똑같은 불빛, 똑같은 일과로 하루하루가 다시 흐릿해졌습니다. 매기는 이제 대부분의 밤을 머물렀고, 에반은 이상한 시간에 드나들며 방문 시간은 짧아지고 변명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가끔 에반은 너무 환하게 웃으며 들어와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지우려는 듯 꽃다발을 내려놓곤 했습니다.

그는 일, 새로운 고객, “미친 마감일”에 대해 이야기했고 클라라는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그녀는 그가 항상 자신의 향수가 아닌 희미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것을 눈치채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긴 치료가 끝난 어느 날 저녁, 클라라는 간호사들이 정맥주사를 교체하는 동안 반쯤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곤 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가슴이 아파요.” 간호사 중 한 명이 속삭였습니다. “그녀는 너무 다정해요. 그리고 그는 항상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요. 얼마 전 밖에서 누군가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어요. 확실히 비즈니스는 아니었어요.” 다른 한 명은 부드럽게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적어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죠.” 클라라의 맥박이 느려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정적에 녹아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누워 깨어 있지 않은 척했다.

눈을 떴을 때, 방은 다시 어두워졌다. 매기는 옆의 의자에서 잠을 잤다. 지난주에 에반이 가져온 꽃은 가장자리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 꽃들을 바라보며 멍한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간호사들의 모든 말이 더 이상 충격이 아닌 확인으로 느껴질 때까지 그녀의 머릿속에서 되풀이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에반은 커피를 손에 들고 밝고 힘찬 모습으로 일찍 출근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뺨에 가볍게 키스했습니다. “좋아 보이네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 미소가 그리웠어요.”

그녀는 웃지 않았습니다. “어젯밤에 어디 있었어요?” 그는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집이요. 왜요?” “전화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차분했다. “당신은 받지 않았어요.” “자고 있었나 봐요.” 그가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긴 하루였어. 무슨 일이야?”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그의 얼굴에 나타난 걱정스러운 표정을 살폈습니다. “휴대폰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얼어붙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놓쳤을 수도 있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놓치지 않았죠. “네?”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왜요?” “그냥 보고 싶어서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어조는 평온했지만 손의 떨림이 그녀를 배신했습니다.

그는 배역에 지친 사람에게서 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클라라, 제발. 지금이 정말 이럴 때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둘 사이의 공기가 두터워졌습니다. 그는 망설이다가 컵을 조금 세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동안 많은 압박을 받아왔어요.” 그가 마침내 말했습니다. “얘기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누군가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 그의 목소리는 너무 방어적이어서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난 그냥… 모든 게 괜찮은 척 계속할 수 없어. 난 지쳤어, 클라라. 나도 지쳐요.” 그녀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당신을 구해줄 다른 사람을 찾았어요?”

그는 얼굴을 문지르며 신음했다. “내가 계획한 게 아니야.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몇 달 동안 당신이 사라지는 걸 지켜봤어요. 여기 들어올 때마다 조금씩 더 당신을 잃어가고 있어요. 난…” “그럼 하지 마세요.” 그녀가 조용히 끼어들었습니다. “여기 있을 필요 없어요.” 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가 무슨 변명을 하려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그는 작별 인사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습니다. 그가 떠난 후 방은 공기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매기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똑바로 앉아 있는 클라라를 발견했고,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침착했습니다.

“얘야, 무슨 일이야?”라고 매기가 속삭였습니다 클라라는 안정된 목소리로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가 죽었어요.” 매기는 눈시울을 적시며 손을 뻗었다. “그럼 아직 내가 있구나.” 클라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돼요.”
클라라는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았고,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피곤함과 이해로 가득 찼습니다. 진단 이후 처음으로 그녀는 쓰러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숨을 쉴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상태로 공중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녀의 혈구 수가 이전보다 더 낮아졌습니다. 의사들은 병실 밖에서 “공격적인 치료”, “제한된 시간”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조용한 어조로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단계의 치료는 매기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기는 정중하지만 지친 목소리로 청구 사무소와 전화 통화를 하며 몇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 밤 그녀는 클라라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눈 밑의 어두운 초승달 모양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녁 클라라의 열이 급격히 올라갔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손가락이 떨리면서 어머니의 팔에 손을 뻗었습니다. “전화해.” 그녀가 속삭였다. “그냥… 에반에게 전화해줘.”

매기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로 나갔다. 클라라는 얇은 벽을 통해 낮고 안정된, 끊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엄마의 목소리만 들었다. “에반, 매기야.” 그녀가 말했다. “클라라가 몸이 안 좋아요. 의사가 조만간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당신이 도와줄 수 있는지, 아니면 적어도 클라라를 위해 여기 있어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잠시 멈칫. 그러자 매기의 목소리가 흔들렸습니다. “아니요, 돈을 달라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와달라는 거예요. 그녀가 당신을 찾고 있어요.” 또 한 번 멈췄습니다. 이번에는 더 길게, 더 날카롭게. 그녀의 다음 말은 더 조용하게 나왔습니다. “알겠어요. 그러니 귀찮아하지 마세요.”

침묵이 길어지다가 희미한 통화 종료 소리로만 깨졌습니다. 매기는 잠시 눈을 반짝이며 서 있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 “겁쟁이”라고 속삭였습니다 다시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억지로 작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안부 전해달래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클라라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끊어지는 것을 못 들은 척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긴 침묵이 흐른 후, 클라라는 “엄마… 우리 어떡하지?”라고 속삭였다 매기는 그녀의 옆에 앉아 떨리는 손에 담요를 덮어주었습니다. 그녀의 미소는 얇고 눈은 유리처럼 맑았다. “그냥 저에게 맡겨주세요.”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그러나 천을 움켜쥔 그녀의 손가락은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그 두 가지에 맞설 만큼 강한 사랑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고통과 불확실성의 흐릿함 속에서 며칠이 흘렀습니다. 클라라의 몸은 연약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매기는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자금이 들어왔어요.” 그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습니다. “부동산이 정리됐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요, 클라라.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요.” 클라라는 약의 안개를 뚫고 눈을 깜빡였다. “정말요?” 매기는 서류를 움켜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많은 재산을 남겨두셨어. 변호사가 이제 다 네 거라고 했어. 치료비, 청구서 등 모든 비용을 지불할 수 있대요.” 클라라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희망이 아니라 확신에 찬 미소였습니다.
다음 날부터 치료가 시작되었고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천천히 그녀의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색이 회복되고 식욕이 돌아왔으며 날카로운 통증의 끝이 기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몇 주가 몇 달로 바뀌었습니다.

항암 치료 횟수는 줄어들었고, 머리카락은 부드러운 갈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서 있을 때 몸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습니다. 매기는 딸이 혼자서 생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머물렀고, 마지못해 떠나는 딸의 눈에는 자부심이 가득했습니다.
클라라는 창문마다 햇살이 들어오고 페인트와 차 향기가 구석구석을 채우는 시내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그녀는 다시 파트타임으로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붓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안정된 손놀림을 되찾았습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상처는 남아있었지만 그녀는 조용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몇 달 후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에반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신체적으로 작아 보이기는커녕 왠지 모르게 피곤해 보였습니다. 머리는 더 가늘어졌고 셔츠는 구겨져 있었습니다. 갑옷처럼 입었던 자신감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화해의 제물처럼 커피를 손에 들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안녕,” 그가 말했다. “좋아 보이네요.” 클라라는 팔짱을 끼고 문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완치되셨다고 들었어요.” 그가 말했다. “직접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초대받지 않은 채 아파트를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잘 지내셨군요. 집이 멋지네요.”

“제 집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벽에 걸린 그림들을 살폈습니다. 밝고 도전적인 그녀의 그림들은 예전에 만들던 부드러운 작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계속 일을 처리하고 있었어요. 더 빨리 연락하고 싶었지만…” 그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뭐요?”
그의 웃음은 부서지기 쉬웠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어요. 회사에서 몇 달 전에 저를 해고했어요. 제가 공연을 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게 믿어지세요?” 그는 거의 즐거워하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리오라는… 떠났어요. 제 돈도 좀 가져갔어요. 오래 버티지 못했나 봐요.” 클라라는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채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야기를 덜 한심하게 들리게 하려는 듯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궁금한 게 있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것을 관리하셨나요? 치료비, 집세, 전부 다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습니다. “당신이 날 죽게 내버려두고 어떻게 살아남았냐고요?” 그의 입술에 미소가 얼어붙었다. “그건 불공평해요.”
“사실이에요.” 그녀가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어요. 대답도 하지 않았고. 난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는데, 에반, 당신은 신경 쓰는 척도 못했어.” 그는 흔들리며 눈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엄마는 할 수 있는 건 다 하셨어요.” 그녀는 고르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의 유산이 들어왔어요.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예상보다 많은 유산이었어요. 제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만큼요.” 에반의 얼굴이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놀란 표정이었고, 그 밑에는 더 큰 욕심이 숨어 있었습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를 위해서요.”
“우리를 위해서요?” 그녀가 부드럽게 반복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닫고 눈을 깜빡였다. “내 말은, 엄밀히 말하면 우린 아직 부부잖아. 제 생각엔…” “잘못 생각하셨어요.” 그녀의 말투가 공기를 가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망설이다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한 걸음씩 다가갔고, 목소리는 애원하는 듯한 중얼거림으로 부드러워졌다. “클라라, 들어봐… 내가 잘못한 거 알아. 당신이 아픈 걸 보고 당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어. 하지만 이제 내가 여기 있잖아. 내가 너와 우리를 돌볼 수 있어.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녀는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이 겨우 서 있을 수 있을 때 밖으로 나갔던 그 남자가 이제는 이미 묻혀버린 삶의 유령처럼 현관 앞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저를 돌봐주시겠어요?” 그녀는 조용히 물었습니다. “내가 도움 없이는 화장실도 갈 수 없을 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당신이 ‘차가 막혀서’ 간호사들이 나를 안고 있어야 했을 때요?” 그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주방 카운터로 걸어가 접힌 봉투를 집어 들고 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뭐야?”
“이혼 서류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서명하셔도 되고 안 하셔도 돼요. 어느 쪽이든, 난 끝났어.” 에반의 입술은 항의라도 하려는 듯, 익숙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패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문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문턱에서 그는 망설였다. “클라라… 당신을 해칠 생각은 없었어.”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게 바로 진심이란 거야, 에반. 결과는 바뀌지 않아.” 문이 닫히자 그녀는 한참을 서서 고요함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창밖으로 도시가 밝고 생동감 있게 움직였습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그녀는 무언가에서 살아남았다는 느낌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젤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반쯤 완성된 그림, 즉 폭풍우를 등지고 햇빛 아래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붓을 들고 금색 물감을 묻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붓은 안정적이고 신중하게 움직였고, 금빛이 구름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처럼 캔버스 전체에 피어났습니다. 한 번의 동작이 마지막 동작보다 가벼워졌고, 세월의 무게가 한 번에 한 겹씩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클라라가 뒤로 물러섰을 때, 그림은 숨을 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폭풍우에도 굴하지 않고 빛나는 여인의 모습이 그림 뒤에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